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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 치료 전 주의

정신분석치료를 하려면 적어도 자신의 증상이 하늘이 내린 벌이라거나 전생의 업이어서 견뎌내는 중이라는 사고를 하는 상태여서는 안됩니다.

무언가 내적인 자신의 문제가 현상의 문제를 악화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분석이 가능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단 고통스러운 것을 고통스럽다고 느낄 수 있어야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마음에 커다란 상처가 있어서 피가 줄줄 흐르는데, 지금 흐르고 있는 피는 피가 아니라 땀이라면서 연상 닦아내고만 있는 사람은 상처를 바라 볼 힘이 없는 상태인 셈입니다. 그런 경우는 일단 상처가 있고 피가 흐른다는 인식에 도달하기만도 상당한 치료시간이 필요합니다. 실제 상처는 금방 눈에 보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잘 보기 힘듭니다.

증상이 생기는 시기는 이미 마음의 상처가 좀 깊어진 시기로 보면 되겠습니다. 어디선가 곪아서 냄새가 나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아픈지도 모르는 상태가 바로 증상이 생기는 시기인데, 우리는 대개 그저 그 냄새만 없애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때 옷을 다 벗겨서 곪은 곳을 찾아내고 상처를 치료하는 작업을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 정신분석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처음에 곪은 곳을 찾아 째고 꿰매고 약을 바르는 작업은 무척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치료를 하려면 그 정도의 고통은 견디어야 합니다.

직장을 아무리 바꾸어도 직장상사만 보면 가슴이 뛰고 불안하여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 그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해 항 불안 약물을 처방받아 안정이 되면 일을 잘해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불안이 별 문제가 안되어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분은 정신분석이 필요치 않습니다.
혹은 정신과의사를 찾아가 면담을 하니 한결 편안하고 남들도 그 정도는 다 겪으면서 견디면서 산다는 것을 알고 견딜만합니다. 이때도 정신분석은 필요치 않습니다.
혹은 최면을 통해 암시나 지지를 받고나니 한결 편하여 그 불안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분께도 정신분석은 필요치 않습니다.
또는 불교적으로 해석하여 내 업이어서 그렇다는데, 하면서 지독한 직장상사의 얼굴을 보니 전생에 자신이 때려준 하인과 닮았다고 해석을 하니 한결 편합니다. 이런 경우에도 정신분석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견디려 노력해도 스멀스멀 무언지 석연치 않습니다. 자꾸 불안하고 반복해서 생기는 의문 때문에 많이 힘이 듭니다. 아무리 사랑으로 직장상사를 대하고자 매일 다짐하지만 막상 얼굴을 대하면 불안하기만 합니다. 별 커다란 이유도 합리적인 원인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대상이 부모님일 수도 있고 자식일 수도 있고 배우자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럴 때, 자신에 대한 의문과 고통으로 견디기 어려울 때, 선택하는 가장 진지하고 깊숙한 치료법이 정신분석이라고 봅니다. 어떤 암시도 어떤 합리화도 되지 않을 때, 무언지 자신 안에 답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될 때, 정신분석의와 함께하는 긴 여행을 시작해 보는 거지요. 긴 여행이 될지 짧은 여행이 될지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자신의 갈등이, 무언지 알지 못하는 자신의 내면의 힘에서 비롯된다는 인식, 각성을 토대로 하여야 정신분석은 진행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벌이라거나 전생의 업이라거나 어떤 마술적인 외부의 영향이 자신을 갈등스럽게 만든다는 전제에서가 아니어야지요. 정신분석과정이 어려운 만큼, 과학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 보려는 입장을 가진 분들에게는 정신분석이 가져다주는 만족은 대단할 것입니다.